안녕하세요 그 시절 서랍속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은 1981년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화려한 컬러 TV가 거실을 점령하고, 국풍 81의 축제 열기가 여의도를 가득 채웠던 그 해.
하지만 그 찬란한 빛 뒤편엔, 정체모를 '괴질' 에이즈의 첫 보고와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빨간 마스크' 괴담이 소리 없이 상륙하고 있었습니다.
안보와 통제, 그리고 '몰래 하는 재미'가 공존했던 격동의 1981년 2분기.
지금부터 그 시절 서랍을 다시 열어봅니다."
정치 뉴스
서울에서 열린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SCM) (4월 29일~30일)
에서 미국은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을 재확인했습니다. 70년대 카터 행정부 시절 '주한미군 철수' 문제로 갈등을 빚던 한미 관계가 전두환 정권 들어 '안보 최우선'으로 급격히 밀착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신군부가 미국으로부터 정권의 정통성을 간접적으로 승인받는 정치적 이벤트였습니다.
SCM의 핵심 성과로는 한국군 전력 현대화 필요성을 바탕으로 미국의 군사원조 및 차관 지원,
한미 간 무기체계 협력 확대와 북한 대응을 위한 연합 방위 강화또한 대규모 한미 연합 훈련을 정례화·강화하기로 합의하며 북한에 대한 강한 압박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한편 6월 25일부터 시작된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 5개국 순방은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정상 외교로 대대적으로 홍보되었습니다. 군복을 벗고 정장을 입은 전두환 대통령의 모습을 강조하며 '군사 지도자'가 아닌 '국가 원수'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켰습니다. 태평양 시대의 주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국민들에게 경제 성장과 외교적 자부심을 심어줌으로써 국내 정치적 억압에 대한 불만을 희석했습니다. 국내의 정치적 억압을 외부 외교 성과로 덮으려는 전형적인 '외교 정치'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뉴스가 첫머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땡전 뉴스'의 기틀이 이 시기에 완성되었습니다.
이웃간의 감시도 심하였습니다.

매월 2열리는 '반상회'가 이 시기에 매우 강력해졌습니다. 정부 지침인 반상회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이웃끼리 서로 감시하게 만드는 '풀뿌리 통제 기구'로서의 역할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반공 의식과 신고 장려 내용도 포함되었으며 대학생 자녀가 있는 집은 특히 요주의 대상이었습니다. 뉴스에서는 "반상회를 통해 일치단결하자"는 리포트가 쏟아졌습니다.
사회 뉴스

81년 4월부터 6월 사이는 전두환 정부가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3S 정책'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던 시기였습니다.
정부는 이미 81년 초부터 "통행금지 해제를 검토하겠다"는 신호를 계속 보냈습니다.

실제로는 통금이 있었지만, 명동, 종로, 이태원 등 외국인이 많거나 관광 특구로 지정된 곳에서는 자정 이후에도 영업하는 가게들을 눈감아주는 식의 '변칙 영업'이 성행했습니다.

특히 일부 개봉관들이 '심야 상영'이라는 이름으로 밤 10시나 11시에 영화를 시작해 통금이 끝나는 새벽 4시까지 관객을 극장 안에 가둬두는 방식의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종로 일대 다방들도 '심야 영업'이라는 이름 아래 커튼을 치고 손님을 받았습니다. 82년이 '완전 해제'라면, 81년은 몰래 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한편 동네마다 '체력은 국력' 헬스클럽(체육관) 붐이 일어나던 해였습니다. 88 올림픽 유치 열기와 맞물려 동네마다 '체력단련장'이라는 이름의 투박한 헬스클럽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화려한 조명이나 거울 벽면 대신, 투박한 시멘트 벽에 '체력은 국력'이라는 붓글씨 표어가 크게 붙어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두꺼운 검정 고무판이 깔려 있어고 아저씨들은 투박한 가죽 장갑을 끼고, 면 수건을 목에 두른 채 땀을 흘렸습니다.기름칠이 덜 된 녹슨 도르래와 쇠사슬이 비명을 지르며 무거운 덤벨을 내려놓을 때마다 "쾅!" 하는 쇳소리와 진동이 지하 상가 전체를 울렸죠.
학창시절의 모습은

'불량 만화' 및 '불량 잡지' 일제 단속하였습니다. 5월 청소년의 달을 맞아 학교 정문에서 선도부와 선생님들이 가방을 다 쏟아붓는 소지품 검사가 유독 심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일본 만화 복사본이나 연예 잡지를 뺏기던 기억은 그 시절 학생들의 공통된 아픔이었습니다.
초등학교의 풍경은 지금 아이들은 상상조차 못 할 ‘기상천외한 미션도 있었습니다.

바로 쥐꼬리 잘라 오기 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쥐와의 전쟁 중이었습니다. 쥐들이 소중한 식량을 갉아먹고 전염병을 옮기자, 정부는 ‘전국 쥐 잡기 날’을 정해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벌였습니다.

집집마다 쥐약을 놓고, 온 동네가 동시에 쥐를 잡던 진풍경이 벌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압권은 학교였습니다. 당시 국민학교(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떨어진 특명은 바로 ‘쥐 꼬리 제출’ 쥐 한 마리를 통째로 가져오면 위생 문제가 생기니, 잡은 마릿수를 증명하기 위해 ‘꼬리’만 잘라서 봉투에 담아오게 한 것입니다.
쥐 꼬리 하나에 우등생이 갈리던 그 시절! 징그러운 꼬리를 가방에 넣고 등교하던 1981년의 웃픈 풍경을 기억하시나요?
아이들의 놀이 또한 다양했습니다.

여름이 다가오는 81년 늦봄, 동네에 "뿌우우우-"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면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명 방구차. 석유 냄새 나는 안개를 뿜으며 달리는 방역차 뒤를 온 동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따라갔습니다. 연기 속에 몸을 숨기며 슈퍼맨이 구름을 날으는 것처럼 팔을 뻗으며 따라갔습니다, 지금 보면 경악할 만한 '살충제 샤워'의 추억입니다.
건강보다는 '해충 박멸'이 우선이었던 시대상을 보여주는 가장 역동적인 길거리 풍경이었습니다.
문화 뉴스
81년에는 조용필에 맞선 진짜 '대세' 가수들도 등장하였습니다.

가수 민해경은 80년도에 데뷔하여 인형 같은 외모와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누구의 노래일까를 부르며 당시 남성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주인공이었습니다.


당시 가요계는 청순하거나 단아한 이미지의 여가수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민해경은 크고 깊은 눈망울에 오똑한 콧날, 그리고 살짝 올라간 입꼬리로 도도하면서도 이지적인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또한 굉장히 과감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몸매 라인이 드러나는 슬림한 원피스나, 어깨를 강조한 파워 숄더 재킷 등을 완벽하게 소화했었죠.
외모는 가냘픈 인형 같은데, 입을 열면 나오는 목소리는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였습니다.


안방 브라운관에서는 MBC 《수사반장》, 《전원일기》가 국민 드라마로 자리 잡았으며, 주말극 《제1공화국》이 정치적 드라마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제1공화국은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정치 비사 드라마였습니다. 81년 내내 국정의 중심이었던 '권력'에 대한 관심을 과거 역사를 통해 풀어내며 어른들의 고정 시청을 이끌어냈습니다.
이승만 역의 최불암 씨는 "국민 아버지" 이미지를 벗고 카리스마 넘치는 초대 대통령으로 변신해 소름 돋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81년은 국민 배우'이자 'MBC의 공무원'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하는 최불암의 해였습다

한편 스크린에서는 성룡이 감독, 각본, 주연을 모두 맡은 첫 번째 연출작으로 의미가 큰 사제출마가 큰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취권>으로 뜬 성룡이 본인만의 스타일로 코믹과 고난도 액션을 보여주며 완성한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초반, 성룡이 부채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적을 골탕 먹이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당시 학교 쉬는 시간마다 부채나 책을 들고 성룡 흉내를 내는 애들이 꼭 한둘은 있었죠.
성룡은 중국 영화는 진지하기만 하다"는 편견을 깨고 '코믹 액션'이라는 장르를 우리 가슴에 심어준 배우로 자리잡았습니다.
사건 사고

5월 14일 오후 4시경, 경상북도 경산군(현 경산시) 경부선 상행선 고산역 인근에서 발생한 '경산 열차 추돌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해방 이후 최악의 철도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된 이사고는 부산발 서울행 특급열차가 건널목에 버려진 오토바이와 가벼운 접촉 사고를 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사고를 낸 특급 열차의 기관사는 통제실에 알리지 않은 채 오토바이와의 충돌 현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서행으로 후진하는 과정에서 뒤이어 오던 부산발 대구행 보통 급행열차가 후진을 하던 특급열차 뒤 부분과 추돌 하였습니다. 급제동을 걸었지만 거대한 쇳덩이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시속 약 70km의 속도로 비둘기호의 뒷부분을 그대로 들이받았습니다. 그 결과 55명 사망, 233명 부상이라는 참사를 빚었으며 이 사고는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이 낳은 인재였습니다.
한편 웃지 못할 해프닝과 괴담 사건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한 '빨간 마스크' 입니다. 당시 초등학생(국민학생)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원래 일본의 '쿠치사케온나(입 찢어진 여자)' 괴담이 1979년경 일본을 뒤흔들고, 1981년 무렵 부산과 서울을 중심으로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당시엔 인터넷도 없었는데 순식간에 전국 학교로 퍼진 '최초의 초국가적 도시전설'이었습니다.
긴 생머리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당시엔 보기 드문 커다란 빨간색 마스크를 쓰고 나타납니다.
하굣길 혼자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나 예뻐?"라고 묻습니다.

"예쁘다"고 하면 마스크를 벗고 찢어진 입을 보여주며 "나랑 똑같이 만들어줄게"라며 입을 찢고,
"못생겼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낫이나 가위로 해친다는 '답정녀'식 공포였습니다.
당시 81년 교실에서는 이 괴담에서 살아남는 법이 진지하게 공유되었습니다.
"포마드!"라고 세 번 외치면 여자가 싫어해서 도망간다는 설과 계단을 올라오지 못한다는 설 등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빨간 마스크 때문에 떨었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스포츠 뉴스
1981년 상반기, 대한민국 뉴스룸이 가장 바빠졌던 순간입니다.

바로 독일에서 활약하던 차범근이었습니다.
그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1980-81 시즌 DFB-포칼 결승에 진출하며 유럽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1981년 5월 2일, 프랑크푸르트는 결승전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우승컵을 들어 올립니다.

비록 차범근이 결승전에서 직접 골을 넣지는 않았지만, 시즌 내내 보여준 활약은 팀 우승에 큰 힘이 되었고
당시 독일 언론은 차범근을 '차붐(Cha-Boom)'이라 부르며 열광했습니다.

대포알 같은 슈팅과 엄청난 스피드, 그리고 당시 유럽 선수들도 튕겨 나갈 정도의 탄탄한 체격은 컬러 TV를 통해 중계되며 전 국민의 가슴을 뻥 뚫어주었습니다. "독일 놈들 다 비켜라!"라는 말이 절로 나오던 시절이었습니다.
해외에 차범근이 있었다면 국내 코트엔 박찬숙이 있었습니다

당시 성인 여성 평균 키가 150cm대였던 시절, 190cm에 육박하는 당당한 체격과 수려한 외모를 가진 그녀는 코트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관중을 압도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인기는 지금의 아이돌급!

남성 팬들은 그녀의 시원시원한 플레이에 열광하였으며, 여성 팬들은 당당한 여성상의 표본으로 그녀를 동경했습니다.
박찬숙 선수가 골밑을 장악하고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모습은 최고의 시청률 보증수표였으며 한국 여자 농구는 세계 수준'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오빠 부대보다 무서운 '언니 부대'를 몰고 다닌 코트의 여왕' 그 자체였습니다.
해외 뉴스

81년 4월 12일, 전 세계의 시선은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로 향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경이로운 기계라 불린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STS-1)'의 첫 발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지의 우주선(아폴로 등)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콜롬비아호는 날개가 달린 비행기 모양으로, 우주에서 임무를 마치고 활주로에 착륙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재사용 우주선'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81년 당시 이 기술은 인류 과학기술의 정점으로 칭송받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콜롬비아호가 발사된 4월 12일은, 1961년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우주로 나간 지 정확히 2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의도치 않은 이 우연 덕분에 전 세계 언론은 "인류가 우주 정복의 두 번째 단계로 진입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지구를 36바퀴 돈 콜롬비아호는 이틀 뒤인 4월 14일, 캘리포니아 에드워즈 공군기지 활주로에 비행기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았습니다. 거대한 불꽃을 뿜으며 수직으로 발사됐던 물체가 비행기처럼 수평으로 착륙하는 장면은 81년 당시 컬러 TV를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안겼고 아이들은 과학 잡지를 보며 우주 비행사를 꿈꿨습니다.

마지막으로 6월 5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의학 저널 MMWR를 통해 기괴한 사례를 보고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평소 건강했던 젊은 남성 5명이 아주 희귀한 '뉴모시스티스 폐렴'에 걸린 것인데요. 보통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진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이 질환이 건강한 청년들에게서 동시에 발견되자 의학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름도, 원인도 모른 채 '면역이 망가진 원인불명의 질환' 단 5명의 희귀 폐렴 환자. 하지만 이때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것이 훗날 에이즈(AIDS)라 불릴 재앙의 시작이었다는 것을요. 이 작은 보고가 인류를 수십 년간 공포에 몰아넣을 거대한 팬데믹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비슷한 환자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1년 뒤인 1982년에야 비로소 'AIDS'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81년 6월의 이 짧은 기록은 오늘날 의학계에서 '에이즈 위기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순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오늘 열어본 1981년의 서랍, 여러분의 추억은 무엇인가요?
그 시절 서랍속 이야기
Make life fun 세월의 먼지가 쌓인 서랍을 열듯, 잊혀진 그 시절의 뉴스들을 하나하나 꺼내봅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이야기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그때 그 시절의 숨겨진 여러분의 추억을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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