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 시절 서랍 속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의 기억 속, 1981년 1월부터 3월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나요?

누군가에게는 영하 30도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한강 얼음을 깨고 낚시를 하던 시린 겨울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난생처음 안방극장에서 마주한 '컬러 TV'의 화려한 원색에 넋을 잃었던 경이로운 봄이었을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 1981년의 첫 90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기묘하고도 긴박했던 전환점이었습니다. 어제의 흑백이 오늘의 컬러로 바뀌고, 유신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제5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체제가 닻을 올리던 시기였습니다.
장충체육관에서 들려온 대통령 당선 소식부터, 바다 건너 들려온 미 대통령 레이건 저격 사건의 충격까지 그 시절의 추억을 꺼내보겠습니다.
정치 뉴스

1980년 5.17 내란 이후 실권을 잡은 전두환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은 이미 11대 대통령이었지만, 이는 임시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2월 11일, 전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국민 직접 선거가 아닌 간접 선거였습니다. 그리고 2월 25일, 역사적인 장충체육관 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과는 90.2%라는 압도적인 지지. 전두환 후보가 제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숫자'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바로 전두환 대통령의 '대수' 문제입니다.


많은 분이 헷갈려 하시는 지점이 있는데 "전두환은 11대 대통령인가, 12대 대통령인가?" 정답은 '둘 다'입니다. 80년 가을, 유신 헌법 아래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그는, 불과 반년 만인 81년 초, 스스로 만든 새 헌법에 따라 다시 선거를 치릅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유산을 지우고 본인의 시대를 공식화하는 '권력의 세탁' 과정이었습니다.

3월 3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는 제12대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날 전두환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토착화'와 '복지국가 건설'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축제 뒤에는 5.18 민주화운동의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었습니다. 정권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3월 3일 당일,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학생운동, 시위 관련자등 5,221명에 달하는 대규모 사면 조치를 발표하였습니다. 김대중 전 신민당 인사에 대한 무기징역 감형도 이 시기 정권의 유화책 중 하나였습니다.
사회 뉴스
정치가 서슬 퍼렇던 그 시기, 서민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1981년 1월은 유독 추웠습니다. 1월 5일, 경기도 양평의 기온은 영하 32.6도까지 떨어졌습니다.

한강은 두껍게 얼어붙었고, 시민들은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에서 얼음낚시를 즐기거나 스케이트를 탔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죠.


당시 거리 풍경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여전희 밤 12시가 되면 사이렌이 울리는 '야간 통행금지'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때였습니다. 11시 30분이 넘으면 택시를 잡으려는 직장인들의 전쟁이 벌어졌고, 자정을 넘겨 순찰대에 걸리면 경찰서 유치장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학창 시절의 모습은 더욱 엄격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교실은 검정 교복과 짧은 머리로 가득 찼습니다. 남학생들은 삭발형 머리를 유지해야 했고, 학생부 선생님들은 교문 앞에서 자를 들고 치마 길이를 쟀습니다. 하지만 그 삭막함 속에서도 낭만은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만화방에 모여 '독고탁'이나 '이상무'의 만화를 보며 떡볶이를 나눠 먹었죠.


그 시절 '전화 한 통'이 지금보다 훨씬 귀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거리의 상징은 붉은색, 혹은 주황색의 공중전화 박스였습니다. 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공중전화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섰고, 뒷사람의 눈치를 보며 짧게 용건만 마치는 것이 일종의 에티켓이었습니다.


재미있는 풍경은 동네 안에서도 펼쳐졌습니다. 마을에 전화가 있는 집은 보통 '부잣집'이나 '쌀집', '점포' 정도였습니다. 전화가 없는 집으로 연락이 오면, 전화를 받은 집 주인이 대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네! 전화 왔어요!"라고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그러면 전화를 받기 위해 앞치마를 두른 채 골목을 뛰어오던 이웃의 모습, 그 짧은 소통을 위해 이웃의 집 안방까지 들어가야 했던 그 시절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보다 이웃 사촌간의 정이 앞서던 시대였습니다.
문화 뉴스

1981년엔 대한민국의 색깔이 바뀌었습니다. 80년 12월 시작된 컬러 방송이 81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 흑백으로만 보던 아나운서의 넥타이 색깔, 여배우의 화려한 드레스가 안방극장에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 대중문화의 폭발을 가져왔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3월 16일, MBC에서 첫 전파를 탄 전설적인 어린이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탤런트 조경환 씨가 주연을 맡은 이 어린이드라마는 당시 초등학생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학교 내의 따돌림, 성적 고민, 친구 간의 우정 등을 다루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배우 조경환 씨가 맡은 '허봉수 선생님'은 겉으로는 무서운 '호랑이' 같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제자들을 아끼는 참된 스승의 상징이었습니다.

가요계는 가왕 조용필의 독주 체제였습니다. 1980년 '창밖의 여자'로 가요계를 평정한 그는 '촛불'이 7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전 국민의 가슴을 적시며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그런 가왕의 독주를 무섭게 맹추격하던 여가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정희 씨입니다. "그대여~"라는 단 한 마디만으로 온 국민의 귀를 사로잡았던 그녀는, 3월 차트 내내 조용필의 뒤를 바짝 쫓으며 '대항마'로 우뚝 섰습니다. 결국 이듬달인 4월, 조용필을 제치고 기어코 1위 왕좌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죠.
하지만 이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981년의 봄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었는데요.

훗날 일본을 사로잡는 엔카의 여왕이 되기 전, 단아한 매력으로 '기다리는 여심'을 노래하던 계은숙 씨.

그리고 "가나다라마바사"라는 독특한 가사와 창법으로 남녀노소의 사랑을 듬뿍 받은 송창식 씨의 '가나다라'가 골목마다 울려 퍼졌습니다.

여기에 서정적인 가사로 청춘들의 감성을 건드린 산울림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그리고 전년도 가요대상을 거머쥐고도 여전히 뜨거운 인기를 과시하던 윤시내 씨의 '열애'까지. 당시 라디오 주파수만 돌리면 명곡이 쏟아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시절 여러분의 인생 팝송은 뭑가 있었나요?


빌보드를 씹어먹은 블론디의 'The Tide Is High'와 아침 요정 시나 이스턴의 'Morning Train'은 컬러 TV 시대의 활기찬 배경음악이었습니다. 밤이면 음악 다방에서 에어 서플라이의 감미로운 발라드가, 라디오에선 세상을 떠난 존 레논의 'Woman'이 울려 퍼지며 청춘들의 가슴을 적셨습니다.
사건사고

당시 이윤상 군 유괴사건만큼이나 81년 초를 뜨겁게 달군 인물은 바로 조세형입니다. 그는 단순한 도둑이 아니었습니다. 고위층과 부유층의 저택만을 골라 털며 '의적'이라는 묘한 별명까지 얻었죠.

특히 81년 초, 그는 구치소 수감 중 탈주를 시도하거나, 그가 훔친 물건들 속에서 당시 고위 권력층의 부정축재를 짐작게 하는 고가의 보석들이 쏟아져 나오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도둑놈보다 도둑맞은 놈들이 더 나쁘다"는 서민들의 냉소적인 반응이 나올 정도로, 당시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단면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회 정화라는 명분 하에 '삼청교육대' 운영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길거리에서 문신이 있거나 행실이 불량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영장 없이 연행되는 일들이 빈번했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이면이기도 했습니다.
스포츠 뉴스
지금은 국민 스포츠인 프로야구, 그 뿌리가 81년 초에 내려졌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정부와 체육계는 프로야구 창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신군부는 민중의 관심을 정치에서 스포츠로 돌리기 위한 이른바 '3S 정책(Screen, Sports, Sex)'의 일환으로 프로야구 창단을 서둘렀습니다.

당시 실질적인 최고 인기 스포츠는 고교야구였습니다. 3월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동대문운동장은 고교야구 연맹전을 보기 위한 동문회와 학생들의 응원전으로 마비되었습니다. 경북고,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광주일고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적인 라디오 중계가 이어졌습니다.
한편 세계를 뒤흔든 해외 스포츠 소식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이 프로야구 창설안을 짜고 있을 때, 바다 건너 미국 MLB에서는 20살의 멕시코 청년 페르난도 발렌수엘라가 전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LA 다저스의 이 신인 투수는 데뷔하자마자 개막 8연승, 5회 완봉승이라는 괴물 같은 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 야구팬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야구뿐만이 아니라 테니스 코트의 '코트의 악동'과 '얼음 공주' 도 유명했습니다.
당시 테니스계는 캐릭터 확실한 스타들의 전쟁터였습니다. '코트의 악동' 존 매켄로가 심판에게 소리를 지르며 관중을 열광시켰고, 이에 맞서 차가운 냉정함을 유지하던 비외른 보리의 대결은 당시 컬러 TV로 중계되는 최고의 볼거리였습니다.

농구 코트에서는 전설의 라이벌,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가 NBA의 황금기를 열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쇼타임' 농구가 안방극장으로 전달되면서, 한국 농구 팬들의 눈높이도 한층 높아지던 시기였습니다.
바야흐로 전 세계가 스포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던 1981년의 봄이었습니다.
해외 뉴스
세계사적으로도 1981년 1분기는 드라마틱했습니다.

3월 30일, 워싱턴 힐튼 호텔 앞. 취임한 지 불과 취임 두 달여 만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한 청년이 쏜 총에 맞습니다.

범인 존 힝클리 주니어의 범행 동기는 황당함을 넘어 경악스러웠습니다.


그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를 보고 아역 배우였던 조디 포스터에게 광적으로 집착하게 되었고,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대통령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이벤트를 기획한 것으로 밝혀 전 세계를 경악케 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수술실에 들어가며 의사들에게 "당신들 모두 공화당원이었으면 좋겠소"라고 농담을 던졌으며 레이건의 농담을 들은 집도의 조셉 지오다노 박사는 실제로는 열렬한 민주당원이었지만 망설임 없이 "대통령님, 오늘만큼은 우리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라고 답하며 수술에 들어갔고, 이 일화는 '미국식 민주주의와 통합'의 상징으로 전 세계 신문 1면을 장식했습니다.

한편 영국에서는 환호성이 들려왔습니다. 2월 24일,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스펜서의 공식 약혼이 발표되었습니다. 약혼 발표 당시 다이애나의 나이는 불과 20살이었습니다.

유치원 보조교사로 일하던 명문 귀족 소녀가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고개를 살짝 숙이고 수줍게 웃는 모습은 전 세계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샤이 다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열광했고 동화 속에서 나온 것 같은 다이애나의 미소는 전 세계적인 '다이애나 신드롬'을 예고했습니다.
81년의 봄은 충격과 희망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의 피격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때, 지구 반대편 이란에서는 444일간 갇혀있던 인질들이 극적으로 석방되며 평화의 소식을 전해왔죠.
여기까지가 1981년의 1월부터 3월까지, 90일간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시절의 희망과 아픔을 딛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이 자료가 여러분의 기억 속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1981년의 봄날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길 바랍니다.
그 시절 서랍속 이야기
Make life fun 세월의 먼지가 쌓인 서랍을 열듯, 잊혀진 그 시절의 뉴스들을 하나하나 꺼내봅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이야기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그때 그 시절의 숨겨진 여러분의 추억을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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