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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절

[그 시절 서랍속 이야기 10화] 👵 전원일기 김수미의 "일용아~" 부를 때 고작 30대 초반?! 😲. 80년 겨울, 대한민국을 떨게 한 삼

by jjh history 2026.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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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qjQsLge_8gk

 

 
 
안녕하세요 그 시절 서랍속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은 1980년의 마지막 세 달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누군가에게는 '서울의 봄'이 저물고 서슬 퍼런 칼바람이 불기 시작한 공포의 계절이었고,

누군가에게는 TV 속 세상이 흑백에서 천연색 컬러로 변하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제5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고, 언론이 통폐합되는 혼돈 속에서도 사람들은 조용필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전원일기의 첫 방송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1980년 10월부터 12월까지, 우리가 미처 다 알지 못했던 그 시절의 뜨겁고도 차가웠던 기록들을 지금부터 아주 자세히 복원해 보겠습니다

정치 뉴스

 
1980년 10월, 대한민국의 정치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10월 27일, 제5공화국 헌법이 공포됩니다

 

11대 대통령 전두환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불리는 간선제를 통해 7년 단임 대통령제가 확립된 것이었습니다

80년 제5공화국 헌법에서 대통령의 임기를 '7년 단임제'로 정한 것은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신군부의 정치적 계산과 시대적 명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18년 장기 집권과 그 끝인 10.26 사태를 지켜본 국민들은 '장기 독재'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군부는 자신들이 과거의 '종신 집권' 모델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딱 한 번만 하고 물러나겠다"는 단임제를 강력히 내세웠으며 한 번의 임기만 허용하는 대신,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하기에는 4년~5년이 너무 짧다고 주장하며 7년이라는 비교적 긴 기간을 설정했습니다

 

 
정권의 구호는 '정의사회 구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의 뒤에는 차가운 칼날이 숨어 있었습니다

 

 
10월 27일 새벽, 신군부는 불교계 정화라는 명목으로 전국 사찰을 습격한 '10.27 법난'을 일으킵니다

수많은 스님들이 연행되어 고문을 당했습니다

신군부가 10.27 법난을 일으킨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당시 조계종월주 스님이 전두환 지지 성명을 거부하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추모하는 등 신군부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와
 

두번째로 사회 정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불교계를 비리 집단으로 몰아세움으로써, 자신들의 집권이 정의롭다는 이미지를 조작하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향력이 큰 불교계를 무력으로 제압해 사회 전반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정권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길들이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말 안 듣는 종교 세력을 쳐서 정권의 권위를 세우려 했던 폭력적 탄압"이었습니다

11월에 들어서며 상황은 더 극단으로 치닫았습니다

바로 '언론통폐합'이었습니다

 

 
보도 지침에 따라 비판적인 언론사는 문을 닫아야 했고,
동양방송TBC과 동아방송DBS은 KBS로 강제 흡수되었습니다

 
11월 30일 밤, TBC의 고별 방송에서 이은하 씨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장면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신군부는 "고별 방송에서 비장한 분위기를 조성하지 말고 절대 울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이 지침을 어기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가수 이은하는 이후

약 36개월간 방송 출연 정지라는 가혹한 제재를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11월 12일에는 '정치풍토 쇄신법'이 발표됩니다

신군부가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정치적 라이벌을 한 번에 제거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정치적 사형 선고'였습니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이른바 '3김'을 포함한 정치인 800여 명의 활동이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현역 국회의원은 물론, 정당 간부, 심지어는 이들을 돕던 비서진까지 포함해 정치활동을 1988년까지약 8년간 금지했습니다

이는 제5공화국 임기 내내 경쟁자들의 입을 막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광주의 아픔을 뒤로한 채, 권력은 그렇게 일인 체제로 굳건해지고 있었습니다

사회 뉴스

 
1980년 12월 1일, 대한민국 사회에 혁명이 일어납니다

바로 '컬러 TV 방송'의 시작입니다

이전까지 흑백으로만 보던 세상이 TV 속에서 천연색으로 펼쳐지자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방송 첫날, 서울 광화문과 종로의 가전 매장 앞은 마비 상태였습니다

당시 컬러 TV 가격은 약 50~60만 원대로, 대기업 신입사원 월급이 20만 원 정도이던 시절이라 엄청난 고가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컬러 TV가 가져온 재미있는 풍경들과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흑백 시절에는 대충 했던 메이크업과 분장이 컬러 TV의 정밀한 화질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흑백에서는 윤곽만 뚜렷하면 예뻐 보였기에 화장을 아주 진하게 했는데, 컬러로 보니 얼굴만 하얗게 둥둥 뜨거나 볼터치가 너무 과해서 '강시'처럼 보이는 여배우들이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방송국 분장실에 비상이 걸렸고 메이크업 기법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컬러 TV의 최대 수혜자는 식품 회사였습니다

흑백 TV에서는 김치찌개나 짜장면이나 다 시커먼 색이라 맛없어 보였지만,

컬러 방송이 시작되자 빨간 고추장, 노란 카레, 신선한 녹색 채소가 화면에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시각적 식욕'을 자극하는 CF가 쏟아져 나왔고,

이는 외식 산업과 식품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거리 풍경은 어땠을까요?
 

 
겨울로 접어들며 길거리엔 '군고구마'와 '국화빵'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여학생들은 단발머리에 검정 교복, 남학생들은 까까머리에 세워진 깃이 특징인 교복을 입고 다녔죠

당시 유행어로는 "오우 예", "나 어떡해" 같은 말들이 아이들 사이에서 퍼졌습니다

 
이 말은 당시 국민 코미디언이었던 배삼룡 씨의 전매특허였습니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그는 특유의 바보 연기와 '개그 춤'으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혀를 살짝 꼬며 "오우 예" 혹은 "부리부리" 같은 추임새를 넣었습니다

 

 
나 어떡해 는 대학가요제의 충격적인 데뷔곡이었으며
 
이 말은 유행어라기보다 전국 국민이 다 아는 '시대의 가사'에 가까웠습니다

거리 곳곳의 레코드점에서는 대형 스피커를 밖에 내놓고 노래를 크게 틀어주었습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나 이은하의 '봄비'가 길거리에 울려 퍼지던 감성이 있었습니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는 코미디언 이주일 씨의 유행어도 대단했습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같은 말들은 당시 초등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흉내 냈던 '국민 유행어'였습니다

 

 
하지만 그 밝은 이면에는 '삼청교육대'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사회 악을 뿌리 뽑겠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사람이 끌려갔습니다

문신이 있다는 이유로,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혹은 이웃과 말다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강제 노역과 가혹행위에 시동달려야 했습니다

 
1980년 8월 4일 '사회정화법'에 따라 시작된 삼청교육은 10월과 11월에 걸쳐 대규모 검거와 입소가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불량배 소탕'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나 아무 죄 없는 일반인들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한 경찰의 무리한 실적 경쟁 때문에 대거 끌려갔습니다


문화 뉴스 

 
대학가는 어땠을까요?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이범용, 한명훈이 부른 꿈의 대화'는 그야말로 메가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왜 '꿈의 대화'였을까요?

 
당시 대학가는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 이후 침묵을 강요받던 '서울의 봄' 뒤편의 차가운 겨울이었습니다

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운 거리에 하나둘씩 피어나는 저 불빛들"이라는 가사는 어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도 작은 희망불빛을 찾으려는 청년들의 정서를 건드렸습니다

안방극장에서는 전설이 시작되었습니다

 
10월 21일,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가 첫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김 회장 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박한 이야기 였습니다

전원일기'는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격변의 시대를 살던 한국인들에게 '마음의 고향' 그 자체였습니다

1980년대는 이촌향도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 현상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고향을 떠나 삭막한 서울 단칸방에 살던 도시 노동자들에게, TV 속 양촌리의 풍경과 김 회장최불암
식구들의 저녁 식사 모습은 눈물겨운 위로였습니다

 

 
어머니, 저 왔어요" 한마디에 모든 갈등이 녹아내리는 한국적 효孝와 가족애는 당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힘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80년 첫 방송 당시 김수미 씨의 나이는 고작 30대 초반이었습니다

아들 '일용이' 역의 박은수 씨보다 실제 나이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노인 분장과 걸진 사투리로 '국민 할머니'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독보적인 노인 연기 덕분에 일용이네는 김 회장네 못지않은 드라마의 큰 축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영화계에서는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이 주목받았습니다

안성기, 김희라 주연의 이 영화는 도시 개발의 그늘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배우 안성기를 만든 작품이 바로 이 영화였습니다

 
아역 스타였던 안성기가 성인이 되어 복귀한 첫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시골에서 상경해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는 '덕배' 역을 맡았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어수룩하지만 순박한 덕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그해 대종상 신인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지금의 '국민 배우' 타이틀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화의 배경은 당시 막 개발이 시작되던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였습니다

 
중국집 배달원 덕배, 여관 종업원 길남, 이발소 조수 춘식의 삶을 극명하게 대비시켰습니다

고향에 내려가 봐야 땅도 다 뺏겼다"는 대사는 당시 산업화로 인해 터전을 잃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청년들의 울분을 대변했습니다

영화 스타워즈 - 블루라군 (푸른 산호초)

해외영화로는 여전히 SF 영화의 신기원을연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과, 브룩쉴즈의 '푸른 산호초'가 청소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영화 샤이닝 - 분노의 주먹

 
그밖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호러영화 샤이닝과 복싱 영화의 전설, 분노의 주먹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샤이닝에서 잭 니콜슨의 소름 끼치는 연기가 돋보인
이 영화는 공포 영화의 품격을 높였다는 찬사를 받으며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분노의 주먹 영화는 평단으로부터 "역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1980년은 비디오 게임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였습니다
 
 

 
바로 일본 남코Namco에서 만든 팩맨이 출시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와카와카" 소리를 내며 노란 원이 유령을 피해 점을 먹는 이 단순한 게임은 오락실을 넘어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당시 폭력적인 슈팅 게임 위주였던 시장에서 팩맨은 여성과 아이들까지 오락실로 끌어들이는 엄청난 공을 세웠습니다

사건사고

80년의 연말은 슬픈 사건으로 얼룩졌습니다

 
11월 13일, 서울 마포구에서 중학생 이윤상 군이 유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윤상 군은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조금 불편했습니다

그런 아이가 실종되자 국민적인 동정론과 함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목소리가 대단했습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직접 방송에 나와 "윤상 군을 살려 보내면 관용을 베풀겠지만, 죽인다면 네놈이 죽을 곳은 없을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할 정도로 국가적인 사안이었습니다

유괴범은 총 6차례에 걸쳐 협박 편지를 보내고, 62차례나 협박 전화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부모님은 범인의 지시대로 돈을 들고 약속 장소에 나갔지만, 범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 국민이 윤상 군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듬해 범인이 학교의 체육 교사였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함께 비극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이를 가장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선생님이, 평소 자신을 믿고 따르던 제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에 사회는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유괴한 지 단 하루 만에 윤상 군을 살해하고도 1년 동안 살아있는 것처럼 부모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뉴스데스크는 이 사건을 톱뉴스로 다루며 매일같이 수사 진척 상황을 보도하였습니다

참 안탑깝고 가슴아픈 소식이었습니다

 
또한 겨울철이면 반복되던 안타까운 사고도 많았습니다

바로 '연탄가스 중독'입니다

 
아침 뉴스마다 어느 동네 일가족이 변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시절이었습니다

동치미 국물을 마시며 사경을 헤매던 모습은 그 시절의 가슴 아픈 풍경이었습니다

 
동치미 국물'은 사실 의학적인 치료제라기보다는, 절박했던 시대가 만들어낸 '민간요법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시엔 구급차가 흔하지 않았고 병원 문턱도 높았습니다

어느 집에나 장독대에 늘 상비되어 있던 동치미 국물은 사고 발생 시 가족들이 가장 먼저 손을 뻗을 수 있는 유일한 '구급약'이었습니다

스포츠 뉴스

당시 한국 스포츠의 자존심은 '복싱'이었습니다

장정구 선수

 
김환진, 박찬희 등 세계 챔피언들의 방어전이 열리는 날이면 온 동네가 TV 앞에 모여 "때려라!"를 외쳤습니다

한국인들에게 복싱은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복서들이 세계를 제패하며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던 시절이었습니다

 
80년대의 복싱 열기는 1977년 홍수환 선수가 파나마에서 보여준 4전 5기' 신화의 여운이 이어진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네 번 쓰러지고도 다섯 번째 일어나 KO 승을 거둔
그의 모습은 80년대 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적 지표가 되었습니다
 
어른들은 복싱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고, 아이들은 미래의 챔피언을 꿈꾸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한편 1980년 10월과 11월에는 고교야구의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선동열, 최동원 같은 불세출의 스타들이 마운드를 지배하며 황금사자기와 봉황대기를 수놓았습니다

이들의 인기는 곧바로 '프로야구' 창설의 기폭제가 되었고,

80년 말부터 정부 차원에서 프로 스포츠 창설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선동열은 80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그해 8월 봉황대기에서 팀을 우승시키며 전국적인 스타로 떠올랐고,

10월과 11월은 그가 대학 진학고려대을 앞두고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최동원은 고등학생이 아니라 이미 대학생이자 국가대표 에이스였습니다

80년 11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2위로 이끌며 무쇠팔'의 명성을 전 세계에 떨치던 시기였습니다
 

 

해외 뉴스

 
80년 11월 4일,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되었습니다

강한 미국을 표방한 그의 당선은 냉전 시대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했습니다

레이건의 당선은 당시 한국의 신군부에게는 '기회'였습니다

 
인권 문제를 강조하며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대립했던 카터 대통령과 달리, 레이건은 '반공反共'을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한편12월 8일, 전 세계를 비탄에 빠뜨린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가수 비틀즈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이 뉴욕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광팬의 총에 맞아 사망한 것입니다

이 소식은 한국의 음악 팬들에게도 커다란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범인 마크 채프먼은 존 레논의 한때 팬이었으나 왜곡된 집착과 망상에 사로잡힌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사건 당일 낮에 존 레논을 만나 그의 새 앨범에 직접 사인까지 받았습니다

 
사인을 받고 몇 시간 뒤, 레논이 녹음실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채프먼은 레논의 등을 향해 총을 쐈습니다

그는 도망치지도 않고 현장에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경찰을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그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존 레논을 죽였다"는 황당한 자백을 해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습니다

 
1980년 12월 31일 명동 거리에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려는 인파가 몰렸습니다

통제와 자유, 흑백과 컬러, 절망과 희망이 뒤섞였던 1980년 그 격동의 3개월을 보낸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정치적인 겨울은 길었지만,

사람들은 컬러 TV의 화려함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꿈꿨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그 시간들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의 토양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1980년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인가요?
 
 
www.youtube.com/@그시절서랍속이야기

그 시절 서랍속 이야기

Make life fun 세월의 먼지가 쌓인 서랍을 열듯, 잊혀진 그 시절의 뉴스들을 하나하나 꺼내봅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이야기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그때 그 시절의 숨겨진 여러분의 추억을 소환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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