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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절

[그 시절 서랍속 이야기 6화]💥1979년 겨울 1212군사반란 총성, 끝나지 않은 전쟁 💥그리고 사라진 희망 , 유신이 무너진 후 2달, 1979년 11월~12월

by jjh history 2026.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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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_WrOaUWjcVs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대한민국은 격렬한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4공화국 유신체제라는 어둠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서울의 봄

 

 

하지만 11월과 12월의 대한민국은 기대와 불안,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복잡한 과도기였습니다.

민주화를 향한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과, 그 틈을 노린 새로운 권력 집단의 야망이 충돌했던 두 달이었습니다.

 

특히 12월 12일, 그날 밤의 총성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유신의 잔재 청산부터 암울했던 서민 경제, 그리고 통제 속에서도 피어났던 문화까지.

1979년 늦가을과 겨울, 격동과 고뇌의 시대를 심층적으로 기록합니다.

 

 

정치적인 상황: 유신 잔재와 권력의 진공

 

 

정치 상황은 10.26 이후 과도기 였습니다.

10.26 사건 발생 직후,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육군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을 겸하며 군의 통제가 사회 전반에 걸쳐 강화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은 11월 3일 국장으로 거행되었습니다.

유신체제는 사실상 붕괴되었고, 국민들은 이제 곧 민주주의가 도래하리라는 기대를 품었습니다.

최규하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습니다.

11월 6일, 계엄사는 10.26 사건의 전모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12월 6일, 최규하 대행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취임 후 그는 유신헌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민주 헌법을 만들 것을 국민에게 약속했습니다.

 

긴급조치 9호 해제

 

12월 7일에는 7년간 지속되었던 긴급조치 9호가 공식 해제되었습니다.

이는 민주 인사들에게는 오랜 통제의 족쇄가 풀린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야당과 시민 사회의 움직임

 

10.26 이전 신민당 총재직에서 제명되었던 김영삼은 정계 복귀를 준비했습니다.

김대중 등 야권 지도자들은 유신 체제 종식과 민주화 이행을 위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1월 24일, 서울 YWCA 강당에서는 위장 결혼식을 이용한 시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민주화를 염원하는 종교인, 학생, 야당 관계자 96명이 검거된 'YWCA 위장 결혼식 사건'이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신 체제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

 

군부 내에서는 이미 새로운 권력 투쟁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10.26 사건 수사를 맡은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그 중심에 섰습니다.

그는 수사를 발판으로 군부 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며, 합법적인 군 수뇌부와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12.12 전개 (Bloody Betrayal, The Coup): 군사 반란의 전개와 진실

 

1. 반란의 주역들: 하나회와 신군부

10.26 사건 수사를 맡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습니다.

그는 육사 11기생 중심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기반으로 군부 내 핵심 요직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신군부는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게 10.26 사건 연루 혐의를 씌워 강제 연행을 계획했습니다.

이는 정 총장을 제거하고 군 수뇌부를 장악하기 위한 명분 없는 계략이었으며

군의 공식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합법적인 지휘 계통을 파괴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정승화 총장

 

2. 12월 12일 밤, 긴박했던 9시간

12월 12일 저녁 7시경, 신군부 세력이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정승화 총장 연행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이 불법적인 연행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하며 군의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신군부는 국방부 장관의 정식 승인 없이 무력을 동원해 작전을 강행했습니다.

 

노태우 9사단장

 

노태우가 지휘하는 제9사단 병력과 제3공수여단, 제5공수여단 등 최정예 부대가 서울 도심으로 출동했습니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은 이를 반란으로 규정하고 진압군 출동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정보 부재와 부대 통솔의 어려움, 이미 포섭된 병력들로 인해 진압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국방부 영내에서는 신군부와 진압군 측 사이에서 실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김오랑 소령

 

이 과정에서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부하에게 체포되었고, 김오랑 소령을 비롯한 다수의 군인이 사상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하여 정 총장 체포 및 연행을 사후 승인받았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군 통수권을 사실상 장악했습니다.

국민의 반응과 언론 통제

 

계엄령 하에 있었던 국민들은 이 사건의 진실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언론은 신군부가 의도한 '총장 연행'과 '군 지휘부 교체' 수준의 정보만 전달했습니다.

민주화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 국민과 야권 세력은 군부의 또 다른 권력 찬탈에 좌절했으나, 저항은 불가능했습니다.

 

 

사회 풍경 (Breathing under Control):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일상

비상계엄

 

10.26 이후의 일시적인 해방감과 12.12 이후의 불안감이 공존했습니다.

비상계엄 하의 엄격한 사회 통제와 통행금지(밤 12시~새벽 4시)는 여전했습니다.

 

야간 통행금지

 

밤 12시가 되면 모든 시민들은 귀가해야 했으며, 이를 어기면 엄중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12.12 사태 직후 서울 시내에 배치된 군 병력은 시민들에게 긴장감까지 주었습니다.

서울의 명동, 종로 등 번화가는 여전히 활기가 있었으나, 밤에는 급격히 한산해졌습니다.

 

 

차량보다는 버스나 합승 택시가 주요 교통수단이었습니다.버스는 늘 승객으로 가득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은 검은색이나 감색 교복을 착용했으며, 두발 규제가 엄격했습니다.

 

 

하굣길 문방구 앞 오락기에서 즐기던 '갤러그'나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유일한 오락 공간이었으며,

롤러스케이트장이 젊은이들의 유일한 오락 공간이었습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현실 비판적인 포크송과 해외 팝송을 즐기는 음악 감상실 문화가 성행했습니다.

당시 음악 감상실과 디스코텍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던 팝송들은 디스코(Disco) 열풍과 팝, 소프트 록 장르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대표곡으로

 

 

YMCA는 전 세계적인 메가 히트곡으로, 한국에서도 따라 하기 쉬운 안무와 경쾌한 멜로디로 큰 사랑을 받았으며,

Ring My Bell 단순하지만 중독성 있는 비트와 멜로디로 유행했던 디스코 곡이었습니다.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한 The Knack의 명곡 My Sharona가 크게 유행했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11월에는 서울 후암동 판자촌에 큰불이 나 수백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화재 위험도 높았습니다.

주택에서는 연탄을 주 연료로 사용하던 시절로, 신문에는 연탄 가스 중독 예방 기사가 자주 실렸습니다.

문화와 예술 (Blossoming Arts): 시대의 위로와 새로운 물결

 

 

가왕 조용필

 

1979년은 가수 조용필이 본격적인 국민 가수로 자리매김하는 해였습니다.

그의 노래 '창밖의 여자'는 큰 히트를 기록하며 대중에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혜은이 , 이은하

 

또한 혜은이, 이은하 등 여성 디바들이 방송을 주도하며 대중가요의 인기를 이끌었습니다.

혜은이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와 귀여운 외모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그당시 당신은 모르실 거야, 감수광, 제3한강교 노래가 큰인기를 끌었습니다.

반면 이은하는 허스키하고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가창력의 디바'로 불렸습니다. 당시 인기곡으로는 겨울 행차, 아리송해, 밤차등이 있었습니다.

 

아바(ABBA)와 비지스(Bee Gees)

해외에서는 디스코 붐이 절정이었으며, 아바(ABBA)와 비지스(Bee Gees)의 음악이 유행했습니다.

2세대 트로이카

 

 

스크린에서는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가 절정이었습니다.

트로이카(Troika)'는 원래 러시아어로 세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의미하며,이 세 여배우가 관객 동원력과 대중적 인기를 독점하면서 트로이카로 불렸습니다.

 

정윤희

 

정윤희는 세련되고 신비로우며 동양적인 고전미가 돋보이는 외모로 평가받았으며,

 

장미희

 

장미희는 지적이고 도시적인 세련미가 강했으며,

 

유지인

 

유지인은 발랄하고 건강미 넘치는 청순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친숙했습니다

 

 

해외 영화로는 블록버스터 영화 '슈퍼맨' 등이 개봉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화 슈퍼맨은 당시 관객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흥행을 안겨준 최초의 현대적 블록버스터 중 하나였습니다.

당신은 사람이 나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You'll believe a man can fly)"라는 슬로건처럼, 크리스토퍼 리브가 하늘을 나는 장면은 이전 한국 영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최첨단 시각 효과였습니다. 관객들은 기술력의 차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1979년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와 12.12 군사 반란 등으로 정치적 암흑기가 드리우던 시기,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슈퍼맨》은 관객들에게 현실을 잊게 해주는 순수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수사반장

TV 드라마는 MBC '수사반장'과 주간극들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MBC 드라마 수사반장은 1971년 첫 방송을 시작하여 1989년까지 약 18년간 방영된 최장수 드라마 였으며 1979년은 이 드라마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실제 경찰청의 협조를 받아 현장감 있는 수사 과정을 담아내려 노력했으며, 한국판 콜롬보 역의 주인공인 최불암 씨가 연기한 박 반장은 정의롭고 인간미 넘치는 형사의 대명사였습니다.

 

 

박 반장을 중심으로 한 김상순, 조경환, 남성훈(또는 김호정) 등의 반원들도 각자의 개성으로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들은 끈끈한 동료애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연대감을 전달했습니다.

TV 매체가 보편화되면서 대기업들의 CF는 제품의 내구성과 실용성을 강조하며 점차 세련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애플 컴퓨터

 

개인용 컴퓨터 (Personal Computer, PC)의 대중화 시작

1970년대 후반은 컴퓨터가 더 이상 정부나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가정과 개인의 책상 위에 놓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시기였습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애플과 같은 회사(법인)의 전신인 애플 II가 교육 및 게임용으로 큰 인기를 끌며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개척하던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소형 컴퓨터의 등장은 정보 처리 능력의 민주화를 가져왔으며, 1980년대 IT 혁명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해외 뉴스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1979년 11월 4일)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1979년 11월 4일, 이란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미국인들을 인질로 잡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원인: 수십 년간 쌓인 이란 국민들의 반미 감정과, 병든 친미 독재자 팔레비 전 국왕의 미국 입국에 대한 혁명 세력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독수리 발톱 작전

 

1979년 11월 4일, 호메이니 추종 학생들이 테헤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52명을 인질로 억류하며, 카터 행정부는 구출 작전(독수리 발톱 작전) 실패 등 굴욕을 겪었습니다.

444일이 지난 1981년 1월 20일,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등으로 인해 이란이 양보하면서 알제리 중재로 인질 전원이 석방되었고, 이는 미국과 이란의 국교 단절로 이어졌습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침공

 

1979년 12월 24일,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냉전이 최고조로 치달았습니다.

소련은 국경 지역의 친소 정권 불안정화와 이슬람 세력의 확산을 막고 공산주의 영향권을 유지하기 위해 침공을 결정했습니다.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대통령을 암살하고 새 지도자를 옹립했으며, 미국 등 서방 진영은 무자헤딘 반군을 지원하며 대리전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데탕트(긴장 완화) 종식과 함께 냉전을 극도로 재격화시켜 미국이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하게 만들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EA%B7%B8%EC%8B%9C%EC%A0%88%EC%84%9C%EB%9E%8D%EC%86%8D%EC%9D%B4%EC%95%BC%EA%B8%B0

 

그 시절 서랍속 이야기

Make life fun 세월의 먼지가 쌓인 서랍을 열듯, 잊혀진 그 시절의 뉴스들을 하나하나 꺼내봅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이야기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그때 그 시절의 숨겨진 여러분의 추억을 소환

www.youtube.com

 

 

희망이 만개하기를 기대했던 1979년의 늦가을은, 결국 총성이 난무하는 겨울밤으로 변했습니다.

12.12 군사 반란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짓밟고, 1980년대 한국의 운명을 또다시 어둠 속으로 몰아넣은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격변의 시기 속에서 살았던 그들의 일상과, 그들을 덮친 권력의 야망.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닌,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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